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을 듣는 가을밤 시월의 어느 쌀쌀한 오후 저녁, 인사동 입구에서 차림새가 소박한 남미의 여자 둘이 펜플루트와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그들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하며 음악 한 곡만 듣고 가자 돌의자에 앉았는데, 난 벌써 쫓기는 기분이 들면서 한 곡을 다 듣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고야 말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내가 뭘하고 싶은지, 뭘해도 되는지를 그만 잊고 산 것이 타성에 젖어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이 두 손을, 이 두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영혼을 어디에 펼쳐놓아야 할지... 이미 오래전에 퇴화했는지 모른다. ... 겨울엔 더 춥고 가난하고 할지 모르지만 떠나지 않고는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친구가 빌려준 큰 베낭을 보며 9월을 보내다... 고마운.. 더보기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8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