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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토요일

계약이 자동연장이 되었는데 부동산에서 집주인이 바뀌었고 시세에 맞게 세액을 올려받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시름에 잠겼다. 서울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주부터 내 모습이 유리벽에 부딪히고 잠시동안 기절한 새 같았다.

며칠 전 부동산 여자와 새 집주인 동생이 내 집을 방문했다.
나는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씩씩거리며 내년까지 살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그들에게 덤볐다.
집주인 동생은 내가 강경하게 나가자 타협 안을 못찾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돌아갔지만 내내 마음이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다.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지, 저녁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불도 안 켜는 버릇까지 생겼다.
평소에 듣던 음악소리도 작아졌다.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한다.

내가 이러한 법을 몰랐다면 부동산의 횡포에 말려들어 온갖 시름에 젖어 봄 내내 지내고도 남았겠지만
나처럼 가난하고 갈데 없는 서글픈 사람들은 이사철이나 계약기간이 다가올 무렵이면 얼마나 마음 조리며 있는가.
법을 보호받기도 자기 밥그릇 찾기도 참 힘겨운 세상이다.

여행 한 번 못가고 4월이 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