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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그리며 들었던 음악

빗소리 들으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치 울음 소리, 또 내가 모르는 다른 새 울음 소리를 들으며 마치 시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기적처럼 그들도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출근 길에 공터 사이에 조그맣게 무리를 이루어 핀 개망초 사이를 넓은 초원처럼 여기며 나는 나비 한 마리도 보았다.
작은 풀 사이가 나비 한 마리를 불러들이듯 숲과 넓은 초원을 바라는 건 내 마음인지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종일 음악을 많이 들었다. 졸면서 듣고 저녁을 지으며, 샤워를 하며... 스바로프스키 지휘의 말러 5번, 베르티니 지휘의 8번 천인교향곡, 지금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듣고 있다.



줄리니 지휘와 웅장하다는 클렘페러 지휘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헬무트 코흐의 독일 레퀴엠은 처음 들었을 때 맑고 힘있는 합창곡 같았다. 슬프고 경건한 모차르트보다 브람스는 조금 더 편하고  레퀴엠을 듣고 있다기보다 장엄하고 따뜻한 종교 합창을 듣는 느낌이 든다. 


헬무트 코흐 지휘의 또 다른 감동을 주었던 베토벤의 코랄 환타지가 들어가 있는 베를린 방송 교향 악단과 함께한 앨범이다.



코랄 환타지는 콘비치니 지휘지만 이 앨범에는 베토벤의 너무나도 아름답고 숭고한 합창곡들로 꾸며져 있어서 내게 소중한 보물이다. 사람 때문에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어도 합창곡을 들으면 사람에게서 가장 고결한 선의지를 느끼게 된다.

더운 공기를 잠시 식혀주었던 비를 그리며 들었던 음악은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걸 고맙게 일깨워주었다.



장엄한 저녁 음악

 
아다지오


꿈이 준다 낮이 잠가버린 것을
밤에, 뜻이 지고
신적인 예감을 따라
해방시키는 힘들이 치솟을 때면.
숲이 술렁인다 강물도, 또 활발해진 영혼도
푸른 밤하늘을 가르고 번갯불이 불어온다.
내 안에서 또 내 밖에서
구별이 없다, 세계와 내가 하나이다.
구름은 내 가슴을 지나며 나부껴 가고
숲은 내 꿈을 꿈꾸며
집과 배나무는 내게
함께한 유년의 잊힌 전설을 들려준다.
내 안에서 강물들이 울리고 계곡들이 그늘진다
달 그리고 창백한 별이 나의 친숙한 놀이 동무.
그러나 온화함 밤,
내 너머로 부드러운 구름과 함께 몸을 숙이는 밤은
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미소 띤 채 다함없는 사랑으로 내게 입 맞추며
옛 시대처럼 꿈같이 가로흔든다
그 사랑스러운 머리를, 그러며 그 머리카락들이
물결친다, 온 세계에서. 창백하게
움찔움찔 치솟으며 그 물결 안에서 수천의 별들이 몸을 떤다.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