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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런 죽음

소월에게 묻기를, 정훈희 노래
 




세상에 쓸모 없고 볼품 없어보이는 한 여자가 더 이상 삶의 기쁨도 슬픔도 없어보이는 듯 강물을 보며 앉아 있다. 강은 청화백자의 문양빛을 닮았으며 잔잔한 물결은 수많은 고기떼의 등 지느러미를 연상시켰다. 그때 여자의 어깨 너머로 비둘기 무리가 날아왔다. 호주머니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어 쌀을 그들 앞에 뿌린다. 어쩌면 이 말없는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 여자의 유일한 즐거움인지 모른다. 비둘기는 여덟 마리다. 무리 중에서 절뚝이는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발에는 질긴 끈이 감겨 있었고, 그것이 덧나서 발가락의 형체는 뭉뚝하게 변해 있었다. 여자는 멀리 쌀을 한 번 뿌려서 나머지 비둘기들을 따돌린 후, 잽싸게 절뚝이는 비둘기 앞에도 뿌렸다. 그가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네 발을 낫게만 해줄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달라지겠지" 정신없이 모이를 주워먹는 절름발이 비둘기에게 혼잣말을 하듯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빌딩 사이로 노을이 지는 걸 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로부터 몇 주일 후 인터넷에 짤막한 부음 기사가 떴다.


'N시 외곽에 떨어져 있는 허름한 빌라에 홀로 살던 삼십 대의 여인이 자택에서 숨진지 이주일 만에 발견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녀가 죽기 직 전에 오디오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로 보아 그리스 여가수의 음울한 노래를 듣고 있었고, 일기장에는 극도의 외로움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S시에 살고 있는 그녀의 가족은 오랫동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결국 그녀의 집을 찾았다가 비보를 접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200*년 3월 17일 새벽, 2분 12초의 통화 내용은 잠결의 어머니와 통화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녀의 어머니는 낌새를 전혀 못 느꼈다고 한다. 평소 때처럼 안부를 주고 받았고 동생부부가 J섬으로 여행 간 것에 대해 부러움을 보였다고도 한다. 한편 시인협회에선 그녀의 일기장과 블로그에 들어있던 시와 글을 추려 잡지에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