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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바람개비다.


올해 처음 나의 애마(愛馬)를 데리고 어제는 한강에 갔었다. 겨우내 애마의 뒷다리가 시원찮았는데 수리점에서 손을 보자 다시 활기를 찾은 듯 늙은 그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마 그도 굶주려왔던 탓에 오랜만에 풀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풀을 뜯어 먹을 생각에 들뜬 그가 안스럽기도 했다. '너무 한 거 아니야, 아직 이르단 말야! ' 내가 넌지시 눈을 찡끗해 보이며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하여튼 강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봄 햇볕처럼 따사롭고 정이 흘러넘쳤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서 방울소리가 나거나 행진곡 같은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회색이나 잿빛을 품고 있는 겨울이다.  애마의 등에 올라탔다. 내 온몸에 바람이 달라붙었다 떨어져나갔다. 내 몸은 바람개비가 된다.


반포대교, 동작대교를 지나 강 건너편 여의도의 63빌딩이 보이는 지점에서 나는 애마의 고삐를 잡아 당겨 다시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만 돌아가자'  지는 해를 등에 지고 당나귀 걸음처럼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강물도 덩달아 수줍은 여인의 뺨처럼 홍당무 빛으로 달아올랐다가 사위어갔다. 강둑에 자전거를 아예 세워두고 지는 노을을 오래도록 서서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해가 막 빌딩 사이로 반쯤 잠긴 상태였다. 나도 덩달아 뒤돌아서서 해를 바라보았다.


강가에는 외로운 사람이 많다. 그 외로움은 때로는 혼자 앉아 있게 하고,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게도 한다.
강물을 보고 있어도 등 뒤에 또 다른 눈을 달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한다. 또한 강은 인생의 배경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영화의 스크린처럼 강물에 펼쳐보이는 날들, 그러나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빛으로 물들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좀 위험해 보이기까지 해서 간혹 낯선 이들이 섬뜩한 생각을 품도록 한다. 그러나  "혼자 앉아 계시네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라고 물어오는 용감한 사람은 없다. 없을 것이다.







Chet Baker, My Funny Valent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