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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제비꽃과 첼리스트

작년 가을 무렵 한강에 앉아있다가 제비꽃 씨앗을 발견하고 검은 비닐에 조금 털어가지고 왔었다. 그것을 지난 달 조그마한 빈 화분에 뿌려두었는데, 세상에 기특하게도 싹이 열 세개나 올라왔다. 곤충의 알처럼 눈에 띄지 않던 아주 작은 존재가 이 지구를 들어올리는 순간을 보게 된 것이다. 싹은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주시하며 줄기를 키우고 있다.  내가 짓궂게 해의 반대 방향으로 책상에 올려놓으면 다음 날 아침 해가 있는 방향으로 또다시 기울어진다.



아무 기대를 않고, 상념 없이 그것들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이 조그마하고 연약한 존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그들에게 아주 척박한 감옥을 선사했을 뿐더러 그들의 미래, 희망, 본능의 의지를 꺾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나도 내가 태어난 땅에 원망을 해본 적이 있던가, 또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좌절과 상실을 느낄 때 환경 탓을 한 적이 있던가. 내가 가장 나다울 때가 언제였던가. 내가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한밤에 공허한 질문을 할 때 그들은 음울한 공기 속에서 내 마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아무 대답 없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편에 내가 저 새싹만큼 따뜻하게 살고 있지 않아서 더 불편한지 모른다.



오늘 이태원까지 일부러 찾아와서 침울해하는 내게 저녁을 사주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둘이 나누어 마시며 친구와 오래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내게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의 소설 속 장면을 설명하고 있었다. 유고 슬라비아 내전 당시 폭격으로 희생된 22명의 죽음을 추모하며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첼로를 연주했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에서 전율을 느꼈고 나를 찾아와준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삶을 살면서 때로 사람들은 큰 의미에 사로잡혀 자신이 위대해지길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에도 엄청난 에너지와 진실을 품고 있다는 믿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내게 제비꽃이고 그 첼리스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