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떻게든 몇 자라도 글을 적어보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괜히 얼굴을 벅벅 문지르다.
찬밥을 후라이팬에 데워 외로운 저녁밥을 먹다가
반찬 곁에 놓여있던 앙상한 선인장 화분에게
외로운 여자가 이렇게 앉아 외로운 저녁을 먹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도 했다.
또 밥을 먹으며 문득 얼마 안 남은 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은
할머니 유기견을 데려와 같이 살까도 생각해보았다.
혈기 왕성한 젊은 개에게 이 집은 감옥이겠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다른 생을 꿈꾼다.
다른 生,
그 다른 생이 '도피'의 또다른 이름일테고.
그렇다고 선명하게 어떤 그림이 떠올라주는 것도 아니다.
요즘 나의 아침은 너무 우울한 나머지 폭발 직전의 다이나마이트 같다.
날카롭고 예민한 그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누가 알아차릴까봐 무서울 정도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을 밤마다 조금씩 읽고 있다.
어제는 책의 저자가 우울증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대체 요법이 담긴
편지 수 백통이 자신에게 날아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뜨개질을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했고,
어떤 이는 치과에서 이를 때울 때 쓰는 아말감에서 누출되는 수은 중독을 의심했고,
또 어떤 이는 탭댄스를 배워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편지는
"맨하튼을 떠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나요?"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누가 "서울을 떠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나요." 묻는다면
물론 나는 매일 서울을 떠날 생각을 한다라고 답변을 하겠지만.
그러나 사람에게도 비둘기와 같이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엄연한 서열이 있다.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수많은 인파에 휩싸이면 항상 그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무엇인가라고.
그러면서 내게 세상은 떠날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는 사람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으로 다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