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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안녕


처마 아래서


겨울비가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센다
더딘 저녁, 누군가를 오래 세워 둔 적이 있었나
여러 번 머뭇거린 뒤꿈치가 만든
뭉개진 자리가 나란하다 창밖을 서성대던
들쑥날쑥한 머리통들 가운데 몇몇이
어느새 방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나
검게 엉킨 실타래들을 풀지 못해
한 번 수의도 지어 주지 못했나
나 간다 이번엔 정말 간다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겨울비, 반에서
반의 반으로 다시 반의 반의 반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줄여 가는 저 겨울비


권혁웅 시


오늘 노날 마지막 멘트에 흘러나온 시 한 편.
스산하고 침침한 저녁 비가 내린다.
연거푸 커피 석 잔 마시고 나서 브루크너 8번 3악장을 듣고 있다.

얼마 전 처음 프레스토 클래시컬에서  큰 마음 먹고 주문한 첼리비다케 에디션 1, 2집.
어쩌면 당신 부러워할지도. 그러나 나는 이번 달부터 카드를 돌려 막아야 한다.
속이 쓰리지만 안 듣는 음반들을 겨우 골라 고클에 내다 판 후 보험료를 내기도 한다.
내 음반들은 월말이 되면 바짝 긴장할지도 몰라. 언제 주인이 날 버릴까 하고 있으니 말야.

불안을 천천히 싸고 도는 선율, 어두운 공기는
쓸쓸하게 따뜻하다. 

곧 11월과 작별해야 한다. 안녕.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