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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봄날의 고별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오후의 전부일 때가 있다. 그 조그맣고 환한 빛은 끝내 나를 밖으로 불러내지는 못하더라도 겨우내 춥고 습기찬 어두운 방에 꽃다발처럼 잠깐동안의 평화를 살짝 던져주고 간다. 나는 가만히 햇빛이 내리쬐는 바닥에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놓는다. 우두커니 서서  활기에 찬 것 같고 조금은 서글픈 세상을 본다. 그러나 투명하고 조용하고 허전한 것만 유리창을 통해 다시 나에게로 반사된다. 유리파편처럼 쏟아지는 침울..

나는 늪에 꼬꾸라져 있는 듯하다. 어쩌다 조증처럼 반짝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기는 했지만 구름 사이로 금방 들어가 버리는 해가 되는 꼴이었다. 그 와중에 만난 책과 음악들... 다큐멘터리..영화...

       

 "다이스케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은 바로 그런 때였다. 그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 중대한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여 직시해 보았다. 그 동기는 단순히 철학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또는 세상사가 너무나도 복잡한 색채로 그의 머리를 물들이려고 안달하는 데서 비롯되기도 하고, 그리고 끝으로 오늘처럼 권태의 결과로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결론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문제를 부정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 책을 구입한 후 헨리 제임스의 단편집을 중고를 구매했다. 헨리 제임스가 1902년 즈음에 쓴 <밀림의 야수>에 관한 소설 줄거리가 이 책에 수록 되었는데 그 내용이 왜 나를 사로 잡았는지 여기에 옮겨 적기로 한다. 그러나 내게는 그의 소설이 참 힘들다.  당신이 인내심이 있다면 '밝은 방'이라든가 그 안에 수록된 단편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 소설은 특별하고 이상한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사는 존 마처의 이야기다.
마처는 그 일을 밀림에서 자신을 쫓으며 튀어나올 기회를 기다리는 야수로 표현한다. 마처는 자신의 비밀을
메이 바트럼이라는 여인에게 털어놓는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메이는 마처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하지만 마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존 마처가 여전히
걱정하고 있는 일, 그의 인생에서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을 계속 이야기할 때, 메이는 그가 막연하게
걱정하면서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 일은 가령 사랑에 빠지는 것의 위험처럼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일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마처는 메이의 그런 말을 흘려듣고 만다.

 그 후 오랫동안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메이가 세상을 뜬다. 사는 동안 어느 한때 메이는
분명 마처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마처는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알아채지도 못했다. 메이가 죽고 나서야
마처는 밀림 속의 야수가 그 순간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처는 메이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제는 종일 브루노 발터의 말러 시리즈 7장을 들었다. 말러와 발터 사이의 인연은 참으로 두텁고 끈끈하다. 말러에게서 지휘 수업을 받기도 했던 발터. 그의 유연성, 온화하고 따스한 울림들..

어긋난 일들로 인해 감정을 소모하고, 약속을 유보하고
햇살이 곱고 예뻐도 말러의 고별을 듣는 봄날, 봄날의 말러, 봄날의 고별...
봄날의 Kathleen Ferrier  커피 한 잔

풀꽃처럼 다시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