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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브루크너를 듣다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듣는다. 이 곡을 들으면 외롭고 형형색색으로 고독해진다.  통영의 미수동 근처 작은 주점에 들어가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시다 정신을 놓았던 그런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말러와 브루크너는 가끔 무언가 잡히지 않는 내 마음을 지독하게 정확하게 표현해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을 회상할 땐 비장하게, 인생의 쓴맛을 체험하게 되었을 땐 초연하게, 이 두 작곡가는 내게 삶을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만 액자 속 12년 전 겨울 마라도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묻는다.
왜 그때 활활 타오르지 못했느냐고...
내가 그 사진을 보고 있는 느낌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나오는 늙은 여인의 절망과 흡사할까.

늙고 가여운 여인이 귀여운 아기를 보며 제 아무리 예뻐하려고 해도 아이는 늙어빠진 착한 여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며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어제친다.


그러자 선량한 늙은 이 여인은 다시 그녀의 영원한 고독 속으로 물러나 구석에서 울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 불행한 늙은 암컷인 우리들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 것들에게조차 즐거움을 줄 수 없는 나이가 된 거지.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조그만 어린애들에게조차 공포를 주는 거야!



나는 내가 조금 젊었던 시절이 그 어린 아이와 같고, 늙은 여인은 현재의 내 모습이라고 느꼈나보다.
정말 나중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을 때 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을 늙은 내 모습을 보고도 자신만은 사랑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꿈꾸며... 꿈꾸다가... 

정말 오랜만에 보이차를 한 주전자 끓여서 다 마셨다니 취했나보다.
홀짝홀짝 보이차를 마시며 훌쩍이다...

브루크너의 4번 교향곡에 와서 지금 난 밀양의 만.어.사를 생각한다. 나도 날아다니는 일만 마리의 물고기 중 하나가 되어서 세상을 떠돌아다닐까, 
현재는 없고 시간속에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