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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Mozart, Requiem(KV 626), Plainchant 


Рыбок надо покормит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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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헛것을 보며 비명을 지르다 새벽에 잠을 깨기도 했다. 며칠째 감기를 앓고 있다.  되도록 약을 안 먹으려고 버텨오다 급기야 병원까지 다녀왔건만. 코를 팽 풀며, 콧물을 질질 흘리며 오늘 하루를 보냈다. 약에 취해 몽롱한 채 누워 있으면 한낮에도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가 밀려든다. 방 안의 적막은 이따금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마저 삼켜버린다. 한밤중엔 사람의 인기척을 숨죽이며 기다릴 때도 있다. 내가 사는 동네 분위기는 가난하고 쓸쓸한 노년 같으면서 마치 1980년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서울 토박이보다 경상도 사람이 좀 많은 듯하다. 왜냐하면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경상도 사투리가 대부분이었기에.  게다가 이태원을 가까이에 두고 있지만 이국 문화와 섞이지 못할 뿐더러 뉴타운 개발 바람에 휩쓸려 남산 아래로 마치 파도에 떠밀려온 부산물 같은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그것이 동네를 더 낙후되게 만들지만 때로 더 빛이 나게 하는 것도 있다. 바로 사람 냄새이다.


나는 강남의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귀가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릴 땐 좀체로 시끌벅적한 곳에선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가 한남대교를 건너 내가 사는 동네에 닿으면 비로소 숨을 가다듬곤 했다. 해마다 가지치기를 당해서 겨우 나무의 모양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버즘나무 가로수가 있고 붕어빵, 군고구마, 좌판에 펼쳐 놓고 파는 과일, 생선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 냄새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터전 앞에서 쉽게 옛 정의 아름다움으로 채색하는 일은 없어야할 터이지만. 어쨌든 가난한 내가 살고 있고, 나를 품어주는 이곳은 내가 어린시절 함께 했던 고향만큼이나 마음이 편하다.


매일 아침 출근할 적에는 내가 꼭 이루고 싶던 것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없이 출근하는 시각에 매일 한강에 나가 유유히 걸으며  비둘기들에게 몰래 모이를 주기도 하고 그러다 한강을 건너는 버스를 보며, 한때의 내가 버스 안에서 창문 밖의 세상을 멍하니 내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왜 이렇게밖에는 살 수가 없었나, 창문 밖과 창문 안의 마음을.


지금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따뜻하게 보는 눈이 간절히 필요하다. 어쨌든 빨리 몸이 나아져서 자전거의 브레이크도 수리하고 봄맞이꽃을 만나러 가자. 별꽃, 제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