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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문턱


모처럼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인상적인 날, 카메라를 들고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일요일이 주는 휴식이 아주 감미롭고 설탕처럼 달콤하다. 음악을 들으며 읽다 만 책의 페이지를 열어보며 오후를 보내고 있다.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몇 장의 음반과 책을 주문했다. 국내에서 제법 괜찮은 앨범들이 가을을 맞이하여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내겐 글렌 굴드와 유진 포더가 눈에 들어왔다. KBS 1FM 명연주 명음반에서 강력추천하는 유진 포더, 음반 내지 역시 진행자가 썼다. 차분하게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수원집으로 가면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선 노트북으로 듣는 것이 고작이라 음질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내 책과 음악들이 있는  조용한 방이 이럴 땐 간절하다. 여름에 읽었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솔직히 두어 편의 단편을 제외하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가 시종일관 진지하면서 치밀한 문장들,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그 무궁무진한 심리세계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그가 살았던 시대와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계몽주의 문학과 비교하기가 너무 힘들다. 또 엉뚱한 생각이지만 소세끼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는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나는 분명히 절대의 경지를 인정하네. 그러나 내 세계관이 분명해지면 분명해질수록, 절대는 나와 멀어지고 만다네. 요컨대 나는 도면을 펴놓고 지리를 조사하는 사람이었지. 그러면서 각반(脚絆)을 매고 산하를 답사하는 현장 사람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려고 안달이 나 있다네. 나는 멍청해. 나는 모순이야. 그런데 멍청한 줄 알면서, 모순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지. 나는 바보다. 인간으로서 자넨 나보다 훨씬 위대해."

나쓰메 소세끼 <행인> 중에서.




고양이의 이름은 '호야' 올해 두 번 새끼를 낳았고 낮에 새끼를 두고 호야가 외출한 사이 몰래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온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끼를 찾더니 두어 달 지나 임신이 된 호야.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관사 앞에 와서 야옹거리면 나는 조용히 문을 열어준다. 그럼 천연덕스럽게 스윽 내 방으로 들어와 눈치랄 것도 없이 자기 방인양 와서 턱 눕는다.  참 뻔뻔스럽고 대범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양이를 닮고 싶은 면이 아주 많다.

총망 받는 '럭키' 오로지 주인한테만 충성하는 럭키는 이곳에 사는 단지 사람들도 적일 뿐이다. 심지어 남의 집에 가서 짖기도 한다. 내게 마음을 주기까지 몇 달이 걸렸지만.. 럭키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소위 주인이란 사람은 럭키를 건넬 때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주었다고 한다. 밭에서 떠돌아다녔던 럭키. 내게 형편이 되면 저 럭키를 거두고 싶을만큼 든든한 병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