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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방으로의 초대


 

J야.

어제 방정리를 마쳤어. 예전 옥탑방만한 크기란다.
과분한 책장이지만, 정리를 해놓고 보니 어쩌면 내가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책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많고 불을 지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사이 잃어버린 것도 많다. 문제는 결국 나란 사람이겠지.

이제 이 방을 비워두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가는구나.

사진이든, 시이든, 예술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들에 거창하게
의식이나 설명을 붙이기 전 자기 고유만의 주장을 확고하게 굳힐 만한 내면의 힘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네 마음속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처럼, 흔들리지 않는 뿌리처럼.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제는 네가 더 힘이 세잖아.
남의 눈에는 한낱 쉬워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평생에 걸리는 일이 있지.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이, 삶의 종착지이든 어느 여정에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내게 뜻하지 않게 찾아왔던 피해의식을 그렇게 다스렸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