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10월 24 ~ 25일 카주라호 (1)








한국에서 기차를 마지막으로 탄 게 언제였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인도에 와서 이렇게 기차를 실컷 타 보게될 줄은... 10월 23일 새벽 아그라 코트역에서 1시 55분에 잔시로 출발하기로 한 기차는 새벽 3시 가까운 시간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몇 시간 기차가 연착되는 거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이른 아침 다시 잔시역에서 카주라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기차 안 풍경은 마치 장이 서는 날 시골버스를 연상케 했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하듯 달렸다. 이름을 모르는 낯선 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저마다 짐을 가득 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심지어 빼곡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 틈으로 땅콩이며 먹을 것을 팔기 위해 비집고 들어서는 행상도 있었다. 기차는 그야말로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바닥은 순식간에 현지인이 먹은 땅콩 껍데기로 지저분해졌고 나는 그 바닥에 최대한 웅크린 채 땅콩 껍데기처럼 몸이 구겨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내게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던, 포대자루 앉아 가던 사진 속의 어느 여인이 자기 옆에 앉으라며 한 뼘 만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 한 뼘의 공간은 실로 그들에겐 큰 불편을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게 양보한 것이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몸을 겨우 빠져 나와 그 여인 옆에 앉았다. 그 자리의 고마움을 난 잊지 못한다.

그 여인과 나는 서로 땀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서로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몰라서 나는 그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베낭 안에서 카메라를 겨우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베낭에서 어떻게 카메라를 꺼냈는지 기억이 없다.
그때 찍은 풍경이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다. 카메라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일거수일투족 내게 집중됐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 금방 카메라를 꺼낸 것을 후회했다. 저 사진들을 찍을 때 속으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카메라를 감췄다. 그리고 다시 전처럼 기차는 흔들흔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익숙해졌는가 싶을 때
내게 자리를 양보했던 여인이 내 목덜미를 훔쳐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그 여인의 알 수 없는 생활의 고단함, 서러움이 전해져 왔다. 왜냐하면 그 여인에게서 얼핏 젖은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나는 정말 그 여인을 와락 끌어 안아주고 싶었다. 어쩌면 검고 메마른 손등을 매만져 보았는지 모른다. 나는 솔직히 부끄러웠다.
"이렇게 우리는 고생하며 살고 있는데 당신은 좋은 가방,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이 먼 나라로 여행을 왔군요!"라고 여인은 회한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얼마를 가다 더 이상 그들에게 불편을 주는 게 미안해서 그 자리를 포기하고 한국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히려 그 여인을 둘러싼 가족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또 삶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희미하게 마음속에 상을 그려 놓았다.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는 힌디어와 함께. 나는 그들보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을지 모르지만 삶이 권태롭고 공허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어느 순간 작별인사를 할 틈 없이 현지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기차는 관광객들만 싣고 카주라호를 향해 달렸다. 나는 텅 빈 좌석 한 모퉁이에 창밖을 보며 앉았는데 마음이 횡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만 뻥뻥 울고 싶었다. 카주라호역에는 눈이 멀 것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잔시역에서 카주라호로 오는 그 슬픈 기차를 나는 잊지 못한다.



카주라호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오후 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꼬박 10시간 이상을 기차 안에서 보낸 것이다.


인도 카주라호는 수많은 미투나(에로틱 조각)로 이뤄진 힌두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원군은 동부, 서부, 남부로 분포 되어 있고 시내 가까이에는 서부 사원군이 있다. 이곳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모두 950~1050년 경 찬델라 왕조 시대에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전성기에는 85개의 사원을 조성했다고 하지만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면서 지금은 22개 사원 밖에 남지 않았다.



왜 찬델라는 신성시할 사원에 이런 외설스런 조각을 만들어 놓았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찬델라 왕국이 건축한 이 사원들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각 하나하나가 보는 내내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카메라의 셔터를 수없이 눌렀지만... 수많은 미투나 상은 음양합일을 추구하고 남녀가 합일된 순간을 득도로 여긴 카마수트라의 가르침을 반영했다고 한다.



사람 손에 닿는 낮은 곳에 있는 미투나 상들은 다 저렇게 훼손이 되었다.





어쩌면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수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고, 또 고대 인도인들은 남자와 여자 그 자체로는 불완전해서 서로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섹스를 통해 합일된 상태를 인간의 가장 완전한 상태로 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코끼리 머리의 가네쉬는 다재다능하며 특히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신이라고 한다. 나는 가네쉬를 좋아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을 가네쉬가 지켜주고 보호해주었으면...


미투나 중에는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상도 있다. 이 미투나가 바로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적지를 방문할 때는 사전에 미리 공부를 해둬야 하는 것을, 그러나 나의 관심은 여전히 사람 사는 모습에 있다. 공부 안 하는 사람의 핑계에 지나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