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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11월 6일 카트만두 --> 포카라




11월 6일 카트만두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가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이동하며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제법 견딜 만했다.
산자락 아래 펼쳐진 수많은 다랭이 논들의 황금빛,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인도와 네팔은 디왈리(Diwali) 축제 기간이라서 길가에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몇 차례 있었다.

나는 남아있는 일정에서 이탈하여 몇 사람과 좀 더 평화로운 포카라에 머무기로 했다.


포카라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맞은편 가게 앞에서 음악이 울려퍼지며 조그만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디왈리 분위기가 넘쳐났다.

꽃으로 장식한 후 저녁에는 가게 앞에 촛불을 켠다.

디왈리 축제 기간 동안 꽃잎과 과일, 향, 초로 건강과 축복을 기원한다.

거리를 걸으면 어디에서나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거나 작은 공연이 펼쳐졌다.




11월 11일 (목) 아침을 먹은 후 나는 게스트 하우스와 가까운 곳에서 150루피를 주고 자전거를 종일 빌리기로 했다.
모자를 어디에다 잃어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썬 크림만 듬뿍 바르고 길을 나섰다. 거리는 우리나라 가을 풍경과 흡사했다. 한창 벼를 베고 있었고 나는 잔뜩 콧바람이 들어 있었다. 아, 며칠 전 데비 폭포까지 왔으니 그 근처라 쉽게 찾아가기는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샨티 스투파 올라가는 입구에서 한 아이가 10루피를 주면 자전거를 보관해주겠다고 한다. 자전거를 맡기고는 목이 타서 산을 올라가는 입구 가게에 들어가 물 한 병을 샀다. 시원한 물로 한 모금 축이고 좀 올라갔을까. 그네를 타는 아이 대 여섯 명이 나를 보더니 주위를 에워쌌다. 좀 무섭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을 전에 데비 폭포를 찾아 헤매다 한 번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돈을 요구하는 수준이 거의 깡패에 가까웠다. 그런데 또 만난 것이다. 이번엔 정색을 하고 돈을 줄 수 없다고 빨리 지나치려는데 한 아이가 돈 말고 물을 달랜다. 물! 물이라고... 물은 얼마든지 줄 수 있지. 하며 나는 선뜻 가방에서 물을 꺼내 건네줬다. 그랬더니 그 물을 아이들이 돌려가며 벌컥벌컥 다 마셔버리는 게 아닌가. 뭐, 금방 올라가겠지... 그런데 그늘이라고는 없고 햇볕은 내려쮜고 꼬불꼬불하고 자갈이 많은 산길을 걷다보니 물을 빼앗긴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입구에서 만난 아이들이 미웠다. 소 모는 할아버지한테 길을 묻고 두어 시간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한 남자 아이와 마주쳤다. 열 살, 아니면 열 세 살 먹은 듯한 그 아이는 나를 보자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왔냐며 묻기도 하고 이쪽으로 가면 가팔라서 아랫쪽으로 가야한다며 길을 알려주었다. 산 아래에서 아이들에게 물을 빼앗긴 것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혹시 이 아이도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니 묻자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며 아이는 다가와 나를 포옹하는 게 아닌가. 그 포옹이 참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낯선 이가 반가워서 순수한 마음이었다지만 이미 내 마음은 닫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었단 말인가. 헛살았다는 것이 한꺼번에 통채로 밀려왔다. 지금은 그 아이의 이름을 잊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사는 아이들은 이렇게 순수한 걸까.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샨티 스투파를 구경하고 다 내려와서 물을 샀던 가게에 들어갔다. 자전거를 보관해준 아이에게 10루피를 주기로 했는데 잔돈이 없었다. 500루피를 주고 모처럼 현지 마살라 라면을 두 개 샀는데 400루피를 주는 게 아닌가. 라면이 얼마냐고 다시 물었다. 50루피... 이렇게 비쌀리가 없는데. 그냥 물 한 병만 사면 될 것을 그날 나는 10루피짜리 라면을 50루피 주고 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처럼 어디에서나 관광객을 상대로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누구나 여유가 될 때는 그냥 스쳐 넘길 수 있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그날 하루가 찜찜하고 우울할 수밖에.

샨티 스투파. 호숫가 좌측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샨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뜻하며 세계평화에 대한 기원을 담은 일본불교의 한 종파에서 세운 사원이다.

맞은편에는 사랑코트가 보이고 샨티 스투파 사원에서 바라본 페와호수와 포카라. 구름 한 점 없는 날엔 설산도 볼 수 있을텐데 그게 가장 아쉬웠다.


공책에 적을 걸 아이의 이름을 또 잊었다.  물동이를 들어주고 내려가는데도 힘에 부쳤는데 아이가 들고 가기엔 물동이가 너무 컸다.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해서 좀 챙피했다. 돌아가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지.